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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works. 듣기 좋은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문화가 일하지 않는 조직'에서는 뭐가 일하나? 사람이? 그럼 '문화가 일하는 조직'은 사람이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긴가?

문화가 일하는 조직 ↔ 지시가 일하는 조직

'문화가 일하는 조직'의 의미를 명확히 하기 위해 그 반대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자. '문화가 일하는 조직'의 반대는 '지시가 일하는 조직' 아닐까. '지시가 일하는 조직'에서는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지시를 하면서 일이 시작된다. 지시가 없으면 일도 없다. 그래서 '일을 준다'라는 표현이 자연스럽다. 일을 주는 사람이 보스, 일을 받는 사람은 부하가 된다. 일하는 기준은 보스다. 보스가 맞다고 하면 일을 잘한 것이고 보스가 아니라고 하면 일을 잘못한 것이다. 어찌보면 간단명료하고 그게 '지시가 일하는 조직'의 장점이다. 

'문화가 일하는 조직'에도 지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디폴트는 지시가 아니라 R&R이다. 지시가 없어도 자신의 R&R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스스로 일을 찾아서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문화가 일하는 조직'에서는 '일을 준다'는 표현이 어색하다. 카카오 신규입사자들 중에 '입사한 지 한달이 지났는데 아무도 나한테 뭐 하라는 얘기를 안한다'면서 고민하던 경우가 많았다. 물론 카카오의 방식을 좋아하던 사람이 훨씬 많았다.

'문화가 일하는 조직'에는 리더가 있고 동료들이 있다. 리더는 조직이 나갈 방향을 제시하고 동료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 돕는다. 일하는 기준은 조직의 목표와 문화다. 문화의 결에 맞춰 목표실현에 기여하면 일을 잘한 것이고 문화를 훼손하거나 목표실현에 기여하지 못하면 일을 잘못한 것이다. '문화가 일하는 조직'은 겪어보면 생각보다 굉장히 모호하고 어렵다. 

수평문화와의 관계

'문화가 일하는 조직'은 수평문화와 사실상 동의어다. '지시가 일하는 조직'의 동의어는 서열문화다. 수평문화는 자율성(자기주도성/autonomy)과 불가분이다. 넷플릭스에서 얘기하는 '자유와 책임'도 같은 얘기다. 합리성이 판단의 기준이어서 적임자를 결정하는 기준은 개인의 역량과 리소스 상황이다. 의사결정도 적임자가 한다. 서열문화는 예의와 불가분이다. 서열이 모든 판단의 기준이다. 의사결정도 그 자리에서 가장 서열이 높은 사람의 몫이다.  

수평문화에서는 지시보다 위임이나 요청이, 보고보다 공유가, 관리/지휘감독/통제보다 공개가 선호된다. 규칙보다 신뢰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단순한 규칙위반은 피드백으로 그칠 수 있지만 신뢰를 깨는 행동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제재하게 된다. 

서열문화에서 조직장의 요건은 상위조직장의 말을 잘 듣는 것이다. 그래야 서열이 유지되고 통제가 잘 작동하기 때문이다. 수평문화에서 조직장의 요건은 팀원들의 지지다. 자유로운 사람은 리더를 지지하지 않을 때 조직을 위해 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평문화는 진화의 방향인가

대체로 그렇게 보인다. 민주화와 경제성장으로 인해 개인들은 더 이상 생존을 위해 조직의 노예로 살아갈 생각이 없어지고 있다. 회사에서 커피 마시고 인터넷 하면서 편하게 지내더라도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존중받지 못하기 보다는 하루에 12시간씩 일해도 택배일과 대리기사를 선택한다. 조직마다 속도 차이는 있겠지만 100년 후 조직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수평적이 되어 있을 것이다. 100년 전 유럽에서 여성들은 투표권을 얻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이해도 되지 않는 상황이다. 지금부터 100년 후 사람들은 '부하직원을 혼낸다'라는 말이 고려가요처럼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수평문화가 효율성이나 생산성과 동의어는 아니다. 민주화가 경제성장과 동의어가 아닌 것처럼. 

수평문화가 효율성/생산성을 유지하기 위한 조건

수평문화는 서열문화에 비해 효율성/생산성이악화되기 쉽다. 수평문화가 서열문화에 비해 집단지성을 이끌어내기 유리한 것은 맞다. 하지만 집단지성은 개인들의 적극적인(proactive) 참여가 있을 때 작동한다.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은 쉽지 않다.

공개/공유

적극적인 참여가 왜 잘 이루어지지 않을까. 많지는 않지만 성향상 적극적인 참여를 기피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수평문화에 맞지 않는 사람들이다. 적극적인 참여를 기피하는 대부분의 이유는 정보의 비대칭성이다. '잘 모르면서 나섰다가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생각이 적극적 참여를 자제하고 수동적 태도를 갖게 만든다. 조직구성원들이 소극적이고 수동적으로 행동할 경우 수평문화는 서열문화보다 훨씬 느려진다. 

수평문화가 작동하게 하려면 정보의 비대칭성을 최소화해야 하고 이를 위해 과감한 공개/공유가 필수적이다. 공개/공유는 맥락에 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맥락을 이해알면 대부분 현명하게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래서 넷플릭스도 'Context, not control'이라고 했다.

흠집제거

공개/공유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수평문화를 손상시키는 흠집들을 지속적으로 제거해야 한다. 수평문화를 손상시키는 흠집들은 매우 많은데 수평문화는 본질적으로 흠집에 취약하다.

가장 중요한 적은 수평문화의 느슨함을 악용하는 썩은 사과다. 무임승차자(프리 라이더)라고 불린다. 서열문화에서는 무임승차자가 살아가기 쉽지 않다. 관리감독 때문이다. 하지만 수평문화는 탈중앙화를 지향하므로 무임승차자에 대한 제재가 방치되기 쉽다. 무임승차자에 대한 제재는 조직장의 역할이다. 조직장이 '무임승차자의 제재'라는 어려운 역할을 간과하지 않도록 시스템으로 보완해야 한다. 조직장이 주기적으로 셀프체크를 하게 만드는 프로그램도 하나의 대안으로 고려할 수 있다. 

서열요소, 즉 서열문화적 표현들(상신, 품의, 명령, 채용, 보고, 결재 등), 서열문화를 강화하는 공간구조(좌석의 배치, 개인집무실, 사장실을 가장 높은 층 에 두는 것 등), 일상에서 서열문화를 리마인드시키는 관행(회의/회식에서 상석, 높은 사람이 부르는 습관, 높은 사람은 앉아서 얘기하고 낮은 사람은 서서 얘기하기 등)도 흠집들이다. 사소해보여서 간과하기 쉽다. 서열요소를 그냥 두고 수평문화를 추구하는 것은 옆을 보면서 앞으로 걷는 것과 같다. 앞으로 가기 어렵다는 얘기다.

피어 프레셔

수평문화는 모멘텀(동력)이 실종되기 쉽다. 피어 프레셔가 강력하게 작동하도록 만드는 것이 해결책이다. 조직장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동료들의 눈치가 보여서 느슨해지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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